안동 하회마을의 공간구성과 살림집
안동 하회마을의 공간 구성과 살림집
한옥마을에 공간 구성, 한옥마을의 건축들, 그리고 한옥마을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들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우리의 가장 전통적인 한옥마을이라고 하는 하회마을을 찾아가서 하회마을에 관한 내용들을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하회마을은 풍산 류 씨가 600여 년간 대대적으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입니다. 우리 마을의 전통마을은 전형적인 동족마을로써 동성에 의해서 마을이 형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회마을 역시 풍산 류 씨가 대대로 살아왔던 마을인데, 본래 풍산 류 씨가 살기 전에 허 씨와 안 씨가 세거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뒤에 풍산 류 씨가 들어오면서 600여 년간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지금도 허 씨와 안 씨에 관한 흔적들이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선시대의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 선생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 선생이 하회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큰 S자 모양으로 감싸고 흐르면서 하회마을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는데 이름하야 '강이름 하(河)' 자와 '돌 회(回)' 자로 해서 강이 돌아간다는 마을이라고 해서 하회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던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보시면 낙동강이 흐르면서 마을이 반달형 모양으로 배치가 되어있습니다. 현재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되어있고, 마을 안에는 국보와 보물 사적들이 풍부하게 있습니다. 그리고 201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면서 일국에 대통령들과 국제기구의 여러 대표들이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전통마을의 공간 구성은 앞에서 설명을 드린 것처럼 맨 뒤에 배산(진산)이 있고, 마을이 있고 그 앞에는 임수(냇물)가 흐르고 그 앞에는 농경지가 펼쳐지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배산임수가 아닌 하회마을 구성
그런데 하회마을의 경우는 물론 이러한 큰 원칙에서는 벗어나지 않지만 먼저 배산이 있고 그리고 농경지가 있고 그 다음에 마을이 있고, 그다음에 임수로써 낙동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마을 동쪽에서 태백산 산줄기인 화산이 서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월산에서 뻗어 나온 진액이 남산과 남산 부용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두 지맥이 만난 곳은 S자 형으로 감싸 돌아가고 있는데 그러면서 마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마을의 중심에는 600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가 마을의 중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풍수지리적인 측면으로 보면 하회마을은 태극형 그러니까 태극 모양으로 한 형국, 그다음에 연화 부수형(연꽃이 물에 떠 있는 형상), 행주형(배가 떠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그러한 명당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마을길을 보면 마을길이 여러 개의 블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골목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통마을은 포도송이처럼 한 덩어리, 한 덩어리가 블록이 형성이 되면서 거기에서 집들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나지막한 토담길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주거지는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해서 강과 산을 향하여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적인 경관과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게 해서 아마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집의 형태를 보면 초가와 기와지붕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회마을 살림집
하회마을에 있는 한옥 살림집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하회마을에는 대표적으로 양진당, 충효당, 작천고택이 대표적인 집들이 되겠습니다. 양진당은 말 그대로 하회마을 풍산 류 씨의 대종택입니다.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고요, 고려 말기에 풍산 류 씨가 하회마을에 입택을 하면서 전서 류종혜 선생이 처음으로 자리 잡은 터가 현재 양진당의 자리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대부분의 집들이 소실되었던 것을 재건축했습니다. 현재에 옛날 집으로는 사랑채만 남아있고, 나머지 건물은 그 당시에 재건축한 건물이 되겠습니다. 이러한 흔적들은 좌측 안채와 연결되던 부분에 두 공과 기둥 윗부분에서 불에 탄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양진당은 부용대를 집 뒤로 북쪽에 두고, 하회마을의 안쪽 중앙에 남향으로 배치되어있습니다. 그림에서 보시는 것처럼 마을 왼쪽 중앙 부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배치는 정남 형배 치는 아닙니다. 그래서 조망을 위해서 정남향에서 살짝 틀어진 형태로 배치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랑채와 안채, 사당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이는 앞에서도 전통 한옥을 말씀드릴 때 남성 공간인 사랑채와 여성 공간인 안채, 그리고 제향 공간인 사당채로 구성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양진당도 이러한 원리는 그대로 적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 건물의 채는 마당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마당은 'ㅁ'자 형인데 여기에 'ㅡ'자형의 사랑채와 대문간채가 연결된 형태인데 사랑채 동북쪽에 별도로 두 채의 사당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남성 공간인 사랑채와 여성 공간인 안채를 연결하고, 그리고 조금 떨어져서 사당이 위치하고 있는 제향 공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안채는 다른 한옥과 마찬가지로 집안에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대문간채를 들어선 다음에 사랑마당이 있는데, 그 사랑마당을 옆으로 돌아서 중문을 통해서 안채로 진입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안채 중문 뒤편에 내외벽이 있습니다. 이 내외벽은 한번 꺾어서 사람이 안채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해서 남녀를 분리하는 유교적인 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내용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집 앞은 먼저 솟을대문이 있습니다. 솟을대문은 보시는 것처럼 대문간 차인데 다섯 칸으로 되어있고, 가운데 문을 중심으로 양쪽에 두 칸씩 있습니다. 그리고 솟을대문을 들어가면 바로 사랑마당에 이르게 됩니다. 사랑마당을 지나면 바로 사랑채가 위치하고 있는데 사랑채는 입암 고택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건물입니다. 그래서 사랑 대청 안에 상부에 양진당이라는 현판이 있는데 이 이름을 따서 남진 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입니다. 그리고 지붕을 보시면 이중의 겹처마로 되어있습니다. 구조를 보면 먼저 기단이 쌓여 있고, 자연석 덤벙 주초가 놓인 다음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겹처마를 형성된 기와지붕이 얹혀 있습니다. 공간 구성을 보면 동쪽 세 칸은 사랑 대청으로 되어있고, 서쪽의 2칸은 사랑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랑대청 정면에는 들어 올릴 수 있는 분 암문이 설치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정면 좌측 끝에는 안채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어서 안채와 사랑채의 분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면 우측면, 배면에는 툇마루가 있는데 그 툇마루에는 소박하고 예쁜 계자 난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다음으로 안채에 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채는 길이가 7칸이 되는 건물들이 'ㅁ'자 형태로 안마당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서쪽에 3칸의 안방이 있고, 안방 동쪽에 정면 2칸 크기의 안대청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집 뒤에 위치한 사당입니다. 사당은 사랑채 동쪽 뒤쪽으로 2동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 사당은 다른 사당과 달리 불천의 사당입니다. 불천의 사당이라는 것은 나라의 큰 공이 있거나 학행이 높은 사람의 신위에 대해서는 대가 바뀌어도 영구히 사당에 모시도록 허락을 받은 신위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서쪽의 큰 사당에는 입암 류중용 선생, 동쪽의 작은 사당에는 겸암 류운룡 선생을 불천위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두 개의 사당은 각각 담장으로 독립되어 있습니다.